마산의 숨은명산 광려산
광려산(匡廬山)은 마산에 있는 산임에도 불구하고 무학산의 명성에 가려 마산 시민조차 그 이름이 생소한 산이다.
광려산은 마산시 내서읍 신감리와 함안군 여항면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해발 720.2m의 광려산은 만날고개~쌀재~대산~광려산 종주 코스로 오를 수 있다.
그러나 이 코스는 시간이 비교적 많이 걸리고 일행 중에 코스 경험자가 없으면 자칫 길을 잃어 곤란을 당할 수 있는 만큼 산아래 광산사 옆으로 오르는 코스가 초보자에게 적합하다.
마산 시내에서 광산사가 있는 곳까지 이동하는 방법은 대중교통보다 승용차가 유리하다. 대중교통은 경남대에서 출발하는 10-3번과 11-2번 시내버스가 있지만 운행횟수가 많지 않아 불편하다.
광산사 아래 신목마을까지 운행하는 10-3번 버스는 하루 7차례 145분 간격으로 운행한다. 감천이 종점인 11-2번 시내버스는 하루 14차례 70분 간격으로 운행하지만 신목마을로 가기 위해서는 신감마을 삼거리에서 내려 50분 가량 걸어야 광산사 입구에 도착한다.
간단한 점심 도시락과 음료수를 넣은 배낭을 지고 11-2번 시내버스에 올랐다. 버스에 오른 지 40여분만에 목적지인 신감마을 삼거리에 도착했다. 여기서 등산로 입구가 있는 광산사까지는 한참 걸어야 한다.
신목마을까지 오르는 길 양쪽으로 한창 무르익고 있는 가을이 다가왔다. 황금빛 벼논 사이로 허수아비가 바람에 옷깃을 나풀거리고 소금을 뿌려 놓은 듯 메밀꽃이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얼마쯤 올랐을까 나이를 짐작하기 어려운 노송(老松) 한 쌍이 들판 가장자리를 지키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신목마을에 들어서는 순간 돌담이 운치를 더하는 옛집이 정다웠다. 돌담을 휘감고 있는 호방넝쿨과 누런 호박 한 덩이, 고개를 떨군 해바라기, 주렁주렁 열린 열매에 가지가 힘에 겨워 처진 감나무 등 행정구역상 마산시이지만 마을은 전형적인 농촌 풍경 그대로였다.
단지 다른 게 있다면 현대식 건물로 지어진 백숙집들이 불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10-3번 시내버스 종점을 조금 지나자 대한불교조계종 광산사라는 입간판이 길을 안내했다. 간판을 따라 광산사로 오르는 길은 나무가 우거져 하늘빛이 그대로 갇혔다.
광산사(匡山寺)는 신라시대 고승 원효대사와 은신대사가 힘을 합쳐 서기 665년에 창건한 절로 백련사, 감천사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광려산은 그 산세가 중국의 여산(廬山)을 닮았다고 해서 ‘려’자를 따오고, 그 여산에 살았다는 광유(匡裕)선인의 이름에서 ‘광’자를 합쳐 만든 이름이라고 전한다.
여산은 은둔자의 대명사인 광유선인과 귀거래사를 지은 도연명이 태어난 곳으로 중국불교 정토신앙의 성지라고 한다. 동국여지승람과 해동지도에 그 이름이 기록된 광산사는 마산지역의 대표적인 고찰(古刹)이지만 영조 18년(1742년)에 발생한 화재와 한국전쟁으로 완전 소실돼 폐허로 변했다. 이후 1954년부터 중건에 착수하여 현재 극락전과 선방, 요사채를 갖추고 있다.
하늘빛을 가둔 길을 따라 10여분 오르면 절 입구에 감천수(甘泉水)라 이름지어진 약수터가 나온다. 평일임에도 이곳 약수를 받아가기 위해 대 여섯 명의 사람들이 줄을 지어 물을 받고 있었다.
광려산을 오르는 길은 이 약수터를 따라 오른쪽 계곡으로 오르면 된다. 약수터에서 물 한 모금 마시고 광산사로 향했다. 절에 들어서는 문의 이름이 다른 사찰에서는 거의 본 적이 없는 해탈문이다.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있는 데 때마침 한 스님이 계단을 오르고 있다. 해탈의 경지에 들기 위해 저 스님은 얼마나 많이 저 계단을 오르내렸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절 경내는 그리 화려하지도 웅장하지도 않았지만 푸근한 기운이 넘친다.
절을 나서 계곡을 따라 광려산 정상으로 향했다. 그러나 등산로 초입부터 광려산 산행의 길잡이 노릇을 하는 안내판은 어디에도 없었다. 코스별로 등산 안내도가 있는 무학산과 비교하면 초라하기 그지없다.
오직 먼저 다녀간 산악인들이 나뭇가지에 매어놓은 리본만이 유일하게 이곳이 등산로임을 알려줄 뿐이었다. 이웃 감천마을 옥수골과 함께 광려천의 발원지인 이곳 절골의 물은 산을 오르는 발걸음을 붙잡을 만큼 시원하고 맑았다.
계곡을 끼고 오르는 길은 숲 속임에도 거의 너덜지대다. 약수터에서 30분 정도 올랐을까 너덜지대엔 으름 넝쿨이 지천이다. 좀처럼 보기 힘든 으름 열매가 입을 벌리고 하얀 속살을 드러냈다.
어렸을 적 기억을 되살려 으름 열매 하나를 따다가 속살을 꺼내 오물오물 씹는 맛이 마치 바나나를 먹는 듯했다. 등산로에 이렇게 많은 으름 열매가 열렸는데 따먹은 흔적을 발견할 수 없는 것은 아마 광려산을 찾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입증하는 대목이다.
으름 열매의 맛을 뒤로하고 다시 정상으로 향했다. 가면 갈수록 등산로가 희미해져 이리 저리 둘러보다가 허기에 지쳐 도시락을 꺼내 점심을 해결하는 데 20여m 전방 바위 끝에 농구공 크기 만한 말벌 집이 눈에 들어왔다.
점심을 먹다말고 혹시 주위에 말벌이 날아다니지나 않을까 겁이 나 얼른 도시락을 배낭에 넣고 ‘걸음아 날 살려라’는 심정으로 얼른 자리를 떴다. 가을 산행에 나설 때마다 항상 벌과 독사 등 복병을 만날까 긴장하게 마련인데 커다란 말벌 집을 목격했으니 잔뜩 겁이 난 것이다.
말벌 집을 발견한 곳에서 정상으로 향하는 동릉까지 30분 정도 걸렸다. 계속해서 산비탈을 오른 까닭에 시원한 날씨임에도 목이 말랐다. 물 한 모금을 마시며 갈증을 달래고 있는 데 갑자기 시커먼 먹구름이 몰려오는 게 아닌가.
비옷을 준비하지 않은 산행이라 서둘러 정상까지 오를 수밖에 없었다. 동릉에서 정상까지는 20분이면 충분하다. 그러나 이날은 비가 내릴 것 같아 빠른 걸음을 재촉했다. 당초 기대했던 함안 여항과 마주보는 무학산 정상의 경치 감상은 다음 기회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정상을 불과 몇 십m 남겨두고 원망스런 빗방울과 함께 구름이 시야를 완전히 가렸다. 평범하게 생긴 정상에는 산악동호회에서 세운 정상 안내판 하나가 외롭게 서있다. 산 높이를 알리는 표지판은 누군가 일부러 훼손해 보기에 흉물스러웠다. 제대로 된 표지석 하나가 아쉬운 대목이다.
비가 아니면 정상을 거쳐 대산과 쌀재~만날고개로 이어지는 종주 코스 산행이 이어지는 데 하는 아쉬움이 밀려왔다.
올라왔던 코스로 내려오는 데 비가 그치기 시작했다. 산아래 광산사에 이를 쯤 비가 완전히 그쳤다. 인적이 드문 산 광려산은 오염되지 않은 자연과 만날 수 있는 도심 속의 휴식처이다. 주말과 휴일을 맞아 노랗고 붉게 물들어 가는 가을이 숨어있는 광려산으로 떠나보자.